2014년 12월 경, 한국의 한 최루탄 생산 업체가 한 언론사에 ‘읍소’에 가까운 기고를 낸 적이 있다. 해당 업체는 최루탄 수출을 둘러 싼 오해로 수출에 지장이 생긴다며 그와 같은 “오해”로 최루탄으로 인한 인명 사고와 인권침해 논란을 지목했다. 그러면서 이 업체는 최루탄이 오히려 시민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그 같은 주장의 타당성은 해당 업체의 주요 고객의 면면을 살펴보면 금세 답이 나올 것이다. 2011년과 2013년 사이 이 업체의 최대 고객은 바레인, 터키로 이 업체는 같은 기간 동안 바레인으로 약 145만 발, 터키로는 약 70만 발을 판매했다. 최루탄 수요가 급증했던 당시 두 나라는 대규모 시위가 열리고 있었다. 바레인에서는 ‘아랍의 봄’을 맞아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거리를 점령했고, 터키에서는 2013년 게지 공원 재개발에 반대하며 열린 시위에 정부가 과도한 무력을 동원해 시위대 강제 해산에 나서면서 시위가 더 격화되던 시기였다. 두 나라 모두 평화로운 시위가 열렸지만 당국의 대응은 잔혹했다.

두 나라에서 경찰의 대응은 무력 사용의 기본 원칙이 되는 비례성∙필요성의 원칙을 한참 벗어난 것이었다. 경찰은 평화로운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난사해 수많은 사상자를 발생시켰다. 바레인의 경우 2011 ~ 2013년 최소 39명이 최루탄 사용으로 사망했고 터키는 2013년 한 해 동안 9명 이상의 생명을 잃었다.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사람들이 부상을 입은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민중들이 겪은 고통의 대가로 ‘대박’난 최루탄 수출

두 나라에서 시위가 격화되는 동안에 최루탄 수출 업체는 ‘시위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바레인 및 터키 수출의 정점을 찍던 2012년 말, 이 업체의 영업이익 증가율은 570%를 찍었다. 정말이지 ‘대박’을 친 것이었다. 이 업체의 성공 스토리는 무기 거래가 피를 먹고 자란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혹자는 무기 거래도 상행위에 불과하니 가치중립적인 행위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애초부터 시위 진압 목적을 가지고 만든 제품을, 그것도 안전 수칙을 엄격하게 지키지 않으면 인명 피해가 발생하기 쉬운 잠재적 살상 무기인 최루탄을 자국민을 탄압하고 있던 국가에 공급하는 행위가 어떻게 가치중립적일 수 있단 말인가?

이제 국제사회는 더 이상 무기 거래를 가치중립적 행위로 보고 있지 않다. 2014년 12월 24일을 기해 발효된 무기 거래 조약은 각국이 무기 수출에 앞서 인도주의적, 인권적 영향을 고려한 후에 수출 허가 여부를 결정할 의무를 부여한다. 무기 거래에 있어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도 이 조약에 서명했고 현재 비준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데, 문제는 한국 정부가 이 조약이 의도하는 바를 얼마나 철저하게 이행할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안전하게’ 사용할 것이라는 터키 정부, 과연 그럴까?

2014년 1월, 한국의 무기 수출 허가 관청인 방위사업청은 바레인 최루탄 수출로 촉발된 국내외 항의 여론이 거세어지자 잠정적으로 수출 허가를 유보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그러한 허가 유보 조치도 잠시뿐이었음이 얼마 전 밝혀졌다. 2014년 말, 새정연 김광진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무기 수출 허가를 주관하는 방위사업청이 11월과 12월에 걸쳐 총 최루탄 165만 발의 터키 행을 승인해줬다.

방위사업청은 ‘사용자가 안전 수칙을 지키고 인권침해를 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붙여서 수출 허가를 내줬다 하지만 터키 당국이 그 같은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상황을 하나씩 뜯어 살펴보면 2013년 터키에서 보았던 끔찍한 탄압이 되풀이될 것이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다.

이번에 터키 당국이 대규모로 최루탄을 수입하는 배경을 살펴보면, ‘터키의 푸틴’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는 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 3회에 걸쳐 총리직을 연임했다. 3회로 제한된 연임 규정에 발이 묶이자 아예 대통령에 출마해 당선됐고, 올해 5월 열리는 총선에서 의석 과반을 확보해 대통령 중심제 개헌에 드라이브를 걸 것이라는 의지를 공공연히 밝혀왔다. 총선을 전후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언제라도 촉발될 수 있는 상황이다. 대규모 시위가 벌어질 때 당국이 어떻게 대응할지는 멀리 볼 것 없이 당시 에르도안 총리가 시위대 진압을 지휘했던 지난 2013년의 상황을 살펴 보면 된다.

2013년 터키 당국의 잔혹한 시위 진압과 관련해 당시 인권을위한의사회, 국제앰네스티, 휴먼라이츠워치 등 유수의 국제 인권단체들은 경찰이 안전거리나 사용법을 무시하고 최루탄을 총처럼 사용해 사망자가 발생하거나 심각한 부상을 입는 이들이 발생했다고 증언했다. 밀폐된 공간, 시위대가 들어간 병원으로 최루탄을 던져 넣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14세 소년이 최루탄에 맞아 숨진 사건과 관련, 재판에 참석한 한 터키 경찰은 “최루탄이 사람을 죽일 수 있지만 우리들은 신경쓰지 않았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지난 해 유럽인권재판소는 터키 경찰이 최루탄을 발포해 시민을 사망하게 한 사건에 대해 당국이 생명권을 침해했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제도 상의 변화를 주지 않으면 비슷한 인권 침해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자, 상황이 이럼에도 방위사업청은 산적한 증거에 눈을 감고 터키로의 최루탄 수출을 허가했다. 터키 민중들의 고통을 대가로 얻어 낸 최루탄 성공 신화가 바로 ‘방산 수출을 통해 꽃 피워내는 창조 경제’란 말인가? 무기 거래로 창조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가 수출하는 것은 고통과 눈물, 그리고 민주주의 탄압의 도구일 뿐이다. 지금이라도 당국은 터키 최루탄 수출 허가를 전면 취소하고 무기 수출 통제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정비에 나서야 할 것이다.

차제에 더 이상 한국에서는 사용조차 하지 않는 최루탄에 대한 수출 모라토리엄 정책 수립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때가 되었다. 98년 무최루탄 원칙을 선언했던 이무영 전 경찰청장은 최루탄을 “과거 군사독재와 권위주의 정부 아래 국민의 손과 발을 묶고 입을 막아온 폭압정치의 도구이자 통제의 상징”이라고 평가했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민주주의 탄압의 도구를 수출하는 나라로 악명을 떨쳐야만 하는가? 이제는 그 지긋지긋한 과거의 억압의 상징을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야 할 때다.

*이 글은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하는 <시민정치시평> 289호(2015년 1월 21일)에 게재한 글입니다.